늦은 밤, 창밖을 적시는 촉촉한 빗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오늘의 작은 안녕들
밤 10시가 넘은 시간, 대구의 밤은 촉촉한 빗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하루의 피로를 천천히 씻어내는 기분이었다. 퇴근길, 우산을 쓰고 걸었던 축축한 거리의 풍경과, 따뜻한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서두르는 발걸음들이 스쳐 지나갔다. 눅눅한 공기 속에서도 느껴지는 도시의 숨결은 왠지 모르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아로마 향을 피워놓으니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소파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하루를 조용히 되돌아본다. 아침에 나누었던 가족들과의 짧은 대화,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웃었던 순간들, 퇴근길에 우연히 발견했던 작은 꽃집의 예쁜 꽃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그 속에는 소소한 행복과 감사함이 숨어 있었다.
창밖의 빗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게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빗물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프랑스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말이 떠올랐다. “일상적인 삶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얼마나 평범한가에 있다. 특별한 순간들은 일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한 점의 색깔과 같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평범함이라는 바탕 위에 작은 특별함들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그림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나는 몇 번이나 웃었고, 몇 번이나 작은 감동을 느꼈을까.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길을 걷다 마주친 아이의 해맑은 웃음,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좋아하는 노래, 퇴근길 하늘에 걸려있던 희미한 무지개.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내일의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한국의 시인, 나태주는 노래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고 오래도록 음미해야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따뜻한 차를 다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니, 귓가에는 여전히 촉촉한 빗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하루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 나누었던 대화들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그들의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그들 역시 자신만의 작은 안녕을 빌며 잠자리에 들었을까. 늦은 밤, 대구의 밤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공간에서 평온한 밤을 보내고 있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나 또한, 내일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기대하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