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후 나른한 오후, 햇살 아래 졸고 있는 고양이와 맴도는 몽상들
점심시간의 활기가 가시고 사무실 안은 나른한 오후의 정적으로 채워졌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클릭음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 다들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창밖은 화창한 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사무실 유리창을 넘어 책상 위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문득,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휴게 공간의 소파 위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햇살이 가장 잘 드는 자리를 골라 웅크리고 있었다. 규칙적인 숨소리에 맞춰 배가 가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빡빡한 업무 스케줄과 끊임없는 디지털 알림 속에서, 저렇게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이 문득 부럽게 느껴졌다. 녀석의 무방비한 모습은 사무실의 긴장된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또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 문득,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집의 이미지를 통해 비일상적인 꿈을 꾼다. 집은 우리의 우주이다.” 저 고양이에게는 이 따뜻한 소파 위가 자신만의 작은 우주이자 안식처일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는 커피 한 잔씩 들고, 햇살 아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나 역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껴보니, 뻐근했던 어깨와 목덜미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했다. 맑고 푸른 하늘 위로 하얀 구름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복잡했던 생각들은 잠시 잊혀지고 몽상에 잠기게 되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 골목길,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던 둑길,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햇살 아래 멍하니 떠오르는 기억들은 아련하고 따뜻했다. 현재의 답답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들이 잠시나마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미국의 작가 마야 안젤루는 말했다. “집은 벽돌과 모르타르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기억과 꿈으로 지어진 곳이다.” 어쩌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그 시절의 따뜻한 기억들이 아늑한 집처럼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키보드 앞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몽롱하고, 창밖의 햇살은 더욱 나른하게 느껴졌다. 책상 위에 놓인 커피 잔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오후의 졸음과 싸우며, 남은 업무들을 처리하기 위해 애썼다. 문득, 소파 위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눈을 뜨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하품을 크게 하고 몇 번의 몸짓 후 다시 편안한 자세로 웅크렸다. 저렇게 꾸밈없이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자유로워 보였다.
창밖의 햇살은 여전히 따뜻하게 쏟아지고, 사무실 안의 공기는 여전히 나른하다. 몽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남은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오늘 오후의 이 나른함이야말로,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른다.